한마음 안으로 들어가라.
한마음 안에서 결합한 우리의 행동이 단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임을 자각할 때 한마음의 힘이 드러난다.
한마음 안에서 1 더하기 1은 2가 아니고 여럿이다.
이런 자각은 개인의 행동을 일으키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가혹한 슬픔'을 덜어준다.
이것을 이해한 마거릿 미드는 이렇게 썼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모인 작은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의심하지 마라.
사실 그것이 역사상 세상을 바꾸어온 유일한 것이다."
한마음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개인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공동의 자아를 더욱더 자각할 때,
연금술적인 과정은 고양된 상상력과 창조성이라는 형태를 띠고 찾아온다.
우리는 어느 그룹의 일원의 것보다 크고, 그룹 일원들의 총합보다 더 큰 앎의 필드 안으로 들어간다.
그 결과물은 그린월드캠페인의 창립자이자 CEO인 마크 바라시가 '공동연구소'로 부르는 그것이다.
우리가 예견하지 못했던 문제해결책들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더욱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창의적으로 영감이 넘치며,
생산적이 되고,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혁신적인 사람으로 변모한다.
한마음 안에서 한데 모인 두뇌 신경들은 개인의 두뇌들을 능가하여 작동한다.
우리는 잊혀버린 한마음 시민권을 되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동원리와 가설들이 네트워크 사고방식에 더욱더 적합한, 새로운 과학이 나타나고 있다.
옛 과학은 자연을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신과학은 자연을 관계로 본다.
옛 과학은 분리, 몰수, 해부, 축소 등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는데 반해,
신과학은 참여, 보충, 통합, 전체론 등의 성격을 지닌다.
옛 과학은 자연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전념했으나,
신과학은 자연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옛 과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추구했지만, 신과학은 자연과의 동반자 관계를 찾는다.
옛 과학은 자연으로부터의 독립에 가치를 부여했으나, 신과학은 자연에 다시 동참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우리가 한마음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한마음의 힘이다.
집합적인 한마음은 존재하기 위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식의 차원이며, 우리는 이미 그것의 일부이다.
다만 우리는 고립된 개인성이라는 환상으로 하나 됨을 대체함으로써 우리의 소속을 잊어버린 것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성이 전부라고 잘못 믿게 된 것이다.
-원 마인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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