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먹고살기가 편해졌다고 하지만 역시 급선무는 민생고 해결에 있다. 국민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국민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 개개인의 소득이 높아진 게 아니라 국민 총소득을 가지고 국민 1인당으로 나눠 평균치를 낸 것이니 참 애매한 숫자놀음이 아닌가. 민생고가 해결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문화니, 예술이니, 종교니 하는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 노나라 정승이 공자에게 나랏일을 걱정하며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먹을 게 적어 걱정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적은 것은 걱정 말고 먼저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십시오."
이 말은 곧 한 사람만 소득이 높아서는 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춥고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한 사람이 1백 만 명 먹을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정치 부재의 사회임에 틀림없다.
노나라 정승이 또 물었다. "우리나라에 도둑이 많아서 정치를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욕심을 안 내면 백성은 상금을 주고 도둑질하래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생고가 해결된 다음에는 사회가 거칠어지지 않고 문화, 예술, 종교 등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없애 주는 길은 민생고를 해결해 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가가 할 일이다. 그 다음에 정신적, 문화적으로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종교가나 학자, 예술가 등의 몫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치가의 정치 신념과 일치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민생고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치인들 때문에 국민들은 항상 고통 속에 살며 그로 인해 빈부차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모든 대중이 잘 살려면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몇몇 사람에게 국한되는 말이지 전 국민에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가령 불교인 한 사람이 앉아서 이렇게 하자고 해도 여러 종교가 있으니 말을 들을 리가 없고, 또 한 종파가 시도하더라도 모두가 다 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편적으로 두루 통할 수 있겠는가.
사회 전체가 잘 살기 위해서는 정치가가 나서야지 일부 종교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종교인은 어느 시대, 어느 국토든 국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1천 명의 스님과 1천 명의 도인보다는 종교와 도를 잘 아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탄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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